옥타메틸사이클로테트라실록산(D4), EU가 규제했는데 국내 제품엔 왜 남아있을까
매끈한 마무리를 만드는 고리형 실리콘 D4를 EU가 화장품 규정과 화학물질 규정, 두 갈래 법으로 따로 규제해온 과정과, 2026년부터 규제가 한 번 더 확대된다는 사실이 왜 중요한지 짚어봤어요.

마무리감 좋은 제품에 왜 실리콘이 들어갈까
헤어 세럼이나 컨디셔너를 바르고 나면 손끝에서 스르륵 퍼지는 느낌이 있죠. 이 매끈함을 만드는 성분 중 하나가 옥타메틸사이클로테트라실록산, 업계에서는 D4라고 부르는 고리형 실리콘이에요. 규소와 산소가 고리 모양으로 네 번 반복되는 구조라서 이름 앞에 '고리(cyclo)'가 붙어요.
D4는 분자가 작고 휘발성이 있어서 발림성이 아주 좋아요. 바르면 잘 퍼지다가 금방 증발해서 끈적임 없이 매끈한 마무리감만 남기거든요. 그래서 헤어 제품, 일부 세정제, 데오드란트 같은 씻어내지 않는 제품에 컨디셔닝제나 용제로 자주 쓰였어요. 문제는 이 '금방 증발한다'는 특성이 그대로 흡입 노출로 이어진다는 점이에요.
D4가 걸어온 두 갈래 규제 길
D4를 둘러싼 EU 규제는 사실 한 줄이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법 체계에서 따로 움직였어요. 이 두 갈래를 구분해서 봐야 지금 상황이 왜 이렇게 복잡한지 이해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화장품 규정이에요. 동물실험에서 흡입 노출 시 생식 기능 관련 영향이 보고되면서 D4는 CMR(발암성·생식독성·변이원성 우려) 물질로 분류됐고, 그 결과 EU 화장품 규정 부속서 II(사용금지 목록) 1388번 항목에 올라 2019년 6월부터 화장품 전반에서 사용이 금지됐어요. 사람에게서 확정된 피해 사례가 축적된 건 아니지만, 규제기관이 예방 원칙을 적용해 아예 카테고리 자체를 막아버린 셈이에요.
두 번째는 화학물질 규정(REACH)이에요. 이건 화장품만이 아니라 모든 화학물질과 혼합물을 대상으로 하는 훨씬 넓은 법인데, 여기서는 D4를 '완전 금지'가 아니라 '농도 제한'으로 다뤘어요. 2020년 1월 31일부터 씻어내는(rinse-off) 화장품에서 D4·D5 함량을 0.1% 미만으로 제한한 게 이 갈래예요. 같은 성분인데 화장품 규정에서는 전면 금지, 화학물질 규정에서는 농도 제한이라는 서로 다른 답을 낸 거죠. 이렇게 법 체계가 겹치면서도 결이 다르게 움직이는 게 규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첫 번째 이유예요.
2026년, 규제가 한 번 더 움직입니다
여기에 더해 REACH 쪽 규제는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어요. 2024년에 채택된 개정 규정으로 D4·D5·D6를 아우르는 새 조항(부속서 XVII 70번)이 생겼는데, 2026년 6월 6일부터는 물질 자체나 혼합물에 D4가 0.1% 이상 들어 있으면 원칙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없게 돼요. 씻어내지 않는 화장품에는 2027년 6월 6일부터 같은 기준이 적용되고, 의료기기나 의약품처럼 다른 카테고리는 2031년까지 유예 기간이 따로 있어요.
이 타임라인을 보면 알 수 있는 게 하나 있어요. "EU가 D4를 규제했다"는 문장은 사실 하나의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2019년부터 2027년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계속 갱신되는 진행형 과정이라는 거예요. 게다가 세척용 산업 공정이나 실리콘 고분자 생산 과정의 중간체처럼 예외로 남는 용도도 상당히 많아요. 규제 하나를 "적용됐다/안 됐다"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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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표에 없다"와 "안전하다"는 다른 말이에요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지점이 하나 더 있어요. 한 지역이 어떤 성분을 규제했다고 해서 곧바로 전 세계 모든 제품에서 그 성분이 빠지는 건 아니거든요. EU가 SVHC(고위험 우려물질) 후보로 올렸다는 소식과, 실제로 각 나라·시장에서 판매금지·농도제한 같은 구체적인 규정으로 옮겨졌는지는 서로 다른 단계예요. 위해성 평가 방식이나 규제 도입 시점, 어떤 법 조문에 반영할지는 지역마다 다르게 흘러가요.
그래서 "EU 규제 성분"이라는 말만 보고 국내에서도 똑같은 방식·시점으로 금지됐을 거라 단정하기보다는, 제품에 실제로 이 성분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국내에서는 어떤 기준이 적용되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 더 정확해요. 위에서 본 것처럼 EU 안에서조차 화장품 규정과 화학물질 규정이 다른 답을 냈고, 그 답도 몇 년에 걸쳐 계속 갱신됐다는 걸 생각하면, 한 문장으로 "규제됐다/안 됐다"를 판단하기는 원래 어려운 일이에요.
또 하나 자주 생기는 오해는 "실리콘은 다 위험하다"로 건너뛰는 거예요. 다이메티콘 같은 큰 실리콘 고분자는 분자가 커서 피부로 흡수되지 않고, 위에서 설명한 규제는 주로 작고 휘발성이 있는 고리형 실록산인 D4·D5·D6 계열에 집중돼 있어요. 다이메티콘의 건강 우려는 D4와는 성격이 다른데, 피부 자극성은 낮은 편이지만 스프레이·분말 제형에서는 흡입 노출과 잔류 단량체 관리가 더 중요한 변수로 꼽혀요. 환경 쪽에서도 고분자 특성상 잘 분해되지 않아 하수 슬러지에 남을 수 있다는 점이 D4의 PBT(잔류성·생물농축성·독성) 우려와는 결이 다르게 논의돼요.
그럼 지금 뭘 확인하면 될까요
D4의 환경 문제는 잔류성·생물농축성이에요. 자연에서 잘 분해되지 않고 지방 조직에 쌓이는 성질이 있어서, 세탁·목욕 폐수를 통해 하수처리 슬러지에 남고 그게 토양으로 돌아가면 다시 환경에 축적되는 순환이 반복돼요. 건강 쪽에서는 흡입 노출이 특히 중요한데, 좁은 욕실이나 세탁실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헤어·바디 제품을 쓰고 나면 실내 공기 중 농도가 올라가는 시간이 길어져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응은 크게 두 가지예요. 성분표에서 '사이클로'가 붙은 실록산 표기(사이클로테트라실록산, 사이클로메티콘 등)를 확인해 보는 것, 그리고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헤어·바디 제품을 쓴 뒤에는 환기를 챙기는 것이에요. 임신 중이거나 호르몬 관련 질환으로 노출을 줄이고 싶다면 이 두 가지를 우선순위로 두는 게 좋아요. 규제가 어느 나라에서 어떤 속도로 들어오는지를 다 따라가긴 어렵지만, 내 손에 든 제품의 성분표를 확인하는 습관은 규제 속도와 상관없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